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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퇴회 후 이야기] 수녀원의 트라우마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방법

by Katharina 2023.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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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수녀원이나 수녀님들에 대한 원망이 아닌 점을 밝힙니다.

오히려 원망과 원한을 품지 않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제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글입니다.

거북한 마음이 드시는 분들은 창 닫기를 부탁드립니다.

내가 독일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얻은 집 발코니에서 🏡

사실 지금 생활이 있기까지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도 완전히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 나는 다 이루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도 없다. 원래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는 법이니까.

 

수녀원에서 퇴회하고 제일 힘들었던 것은 가족들과의 불화였다.

 

수녀원에서 퇴회한 나를 반갑게 받아들일리가 없었다. 이미 그 때 나이는 서른이었으니까.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서른이라는 나이는 아직도 한참 어린데, 내가 지금 서른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아무 것도 못한다 하더라도 얼마나 좋을까 싶을 정도로 어린 나이인데, 그 때는 서른에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었고, 우리 가족들이 그렇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었던데다, 남동생과 엄마는 성당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그 성당이 내가 살았던 수녀원의 수녀님들이 파견되는 곳이라, 모든 소문들에 대해 수치스러워 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내 결정에 책임을 져야했다.

나를 위해 산 꽃

나와서 1년 정도는 많은 방황을 했던 것 같다.

수녀원에서 받은 300만원 정도의 정착 지원금은 사실 눈깜짝 할 사이에 날아가버리고 말았는데, 직장 다니려면 옷도 필요했고, 화려하게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화장이 있었기에 화장품도 사야했고, 직장을 다니려면 버스 지하철 요금도 첫달은 받은 돈에서 냈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첫달 점심값도 마찬가지고. 

 

나는 그나마 다행인 것이 간호학을 전공했었기에, 먹고 살 걱정은 안해도 되었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간호사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6년이라는 세월을 밥하고, 기도하고, 청소하고, 성경 읽는데만 시간을 썼으니, 다시 임상에 갈수 없다는 결론이 섰고, 나는 보건소에 계약직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독일에 오기 전 2군데의 보건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밖에서 일했던 사람들에게는 보건소 일이 쉬운 일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까지 했던 나로서는 매일이 지옥이었다. 그리고 수녀원에서 입고 다니던 스타일에서 지금 평범하게 되기까지도 참 많은 착오들을 거쳐야했는데, 정말 수수하게 입고 다녔다보니, 모두들 내가 어디 아픈 사람이거나 굉장히 폐쇄적인 사람으로 여기곤 했다.

 

다른 수녀원에 들어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했는데, 그게 모두 시간 낭비였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인정한다. 결국 모든 수녀원은 거기서 거기라는 것, 나의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 그리고 내가 바라는 삶을 어느 수도원이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정말 거기서 바라는 삶은 내가 받아들여야만 거기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남자친구가 나를 위해 해준 크로와상
너와 내가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아니기를, 사랑해!

1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가족들과 싸우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제대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1. 여행

나는 수녀원 들어가기 전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게 수녀원에서도 한이 되었었는데, 친구와 처음으로 해외, 일본 여행을 떠났고, 그 때 나는 정말 많은 행복감을 느꼈다. 수중에 많은 돈이 없었지만, 부족한 나에게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선물을 사는 것이 참으로 행복했다. 내가 마음 없는 기도만으로 때우는 바리사이가 아닌, 진짜 누군가의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2. 쇼핑

내가 엄청나게 쇼핑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회로 나온 만큼, 옷도 화장품도 모든 것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었다. 6년이라는 세월을, 그 꽃다운 20대를 햇빛에 그을리고 거무튀튀해진 내 피부를 되돌리는 것에 많은 노력을 했고, 내 건강도 정말 내 스스로 챙기는 것을 시작했다. 영양제도 사먹고, 책도 사고, 수녀원에서 해왔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냥 추레하게 입었던 검은 잠바도, 그냥 버려버렸다. 그게 얼마였던지 간에.

3. 인간관계

아무리 내게 잘해주고, 힘이 되어줬던 좋은 수녀님이었다 할지라도, 그냥 연락 끊고, 수도생활 잘하시길, 그리고 건강하시길 빌어주고 아예 안만나고, 아예 문자도 전화도 안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언가를 하던간에 그것이 소문이 되어 수녀원 전체에 퍼질 때도 있었고, 없는 헛소문이 돌아 다시 내게로 돌아오기도 했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에게 칼로 내 마음을 다시 난도질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성당, 수녀원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단절하기로. 어차피 내가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래서 모든 신부님, 수녀님, 신자 다 잘라버렸다. 게다가 부산을 떠나 서울로 이사하게 된 것도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4. 자기발전

자기 발전을 죄악시 하던 수녀원의 삶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로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너진 내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작은 성취라도 이루어야 하는데, 처음에 독일에 오겠다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나는 퇴회 후 당장 공무원이나 보건교사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고, 제일 먼저 취득한 것이 한국사 1급이었다. 사실 지금에서야 필요없는 자격증이지만, 그 작은 성취가 지금의 나의 도전들에 큰 믿거름이 되고 있다는 사실!

운전면허든, 조무사 자격증이든, 한국사든, 요리 자격증이든 뭐든 도전해서 무엇 하나라도 반드시 이룰 것!

나는 한국사-독일어 자격증-독일취업-독일간호사면허취득-대학병원취업을 이루었고, 지금 나의 목표는 중환자실 간호사를 하며 다시 Weiterbildung을 해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인데, 모두들 내가 외국인이고 못 이룰거라고 말하지만, 내가 이루어 왔던 작은 도전들이 나에게 말해주고 있다. 나는 반드시 이루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높이가면 뭐가 있냐고? 당연히 아무것도 없지. 그런데도 내가 왜 하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더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언젠가는 외국인이지만 독일에서 멋진 엄마, 멋진 아내로 살고 싶으니까.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벌어서 우리 엄마한테 더 잘해주고 싶으니까. 나와 내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싶으니까. 

5. 일기/성찰

내가 부족했던 부분과 내가 어쩔 수 없었던 부분, 혹은 내가 아닌 타인이 정말 잘못했던 경우를 나눠서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녀원에서 조금 살았다면 사실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게 된다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한 결 가볍다고나 해야할까. 물론 그게 잘 되었다면 수녀원에서도 잘 살았겠지만,

내가 부족한 부분을 잘 다듬고 나가다보면, 사회에서 좋은 친구들이 생긴다. 하느님을 모르지만, 수녀원에서보다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수녀원에서 좋게 길러진 면을 더 잘 가꾸어 나간다면, 나는 치명적인 매력(?)을 갖게되는 데,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수녀원에서 살았나 하는 생각 대신에, 거기서 살아서 감사했다고 생각하다보면, 가끔씩 치오르는 분노가 사그라들게 되는 것을 경험하곤 했다.

6. 때로는 도망가는 것도 괜찮다.

사람이 매번 도망치고 회피하고는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매번 부딪혀서 이겨나가고만 살 수도 없다. 지혜롭게 적절히 어떨 땐 도망가고, 어떨 땐 부딪치고 해야 살 수 있지, 수녀원에서 말하는 것처럼 맨날 직면하고 이겨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 도시를 떠나는 것도, 다른 성당을 나가는 것도, 뭐 사실 나는 성당을 안나가고 있는데, 그게 사실 내 정신상태에는 좀 낫다. 백화점에서 보이는 중년 쯤 되어보이는 수녀님에게 순간 분노의 감정이 올라오고 나서부터는 최대한 수녀님을 안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들었고, 사실 성당에서 신부님 수녀님들이 어떻게 사는 지 잘 아니까, 성당에 나갈 때마다 부정적인 생각이 참 많이 들어서 독일에 오고 나서부터는 아예 안나가고 있다. 지난 번 한국에 휴가 갔을 때 성당에 미사를 드렸는데, 안 좋은 기억들과 트라우마들이 살아나면서, 아직도 내가 괜찮아 진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게 죄라면 죄지만, 나는 분명 하느님을 믿고 있고, 독일 성당에 나가는 것을 차차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를 지금 채찍질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다보면 나를 위해 꽃을 주는 이도 있으니

누군가는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퇴회 후 쉬운 시간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이 나를 믿어주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자기 목숨을 자기가 버렸듯이, 자기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하느님도 어쩔 수 없다고 본다. 그러니까 하느님이 나를 믿어주시기에 나를 믿는 것도 맞지만, 내가 단지 하느님의 이유만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로서는, 그 전에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주위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내가 그동안의 도전들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나를 알고, 내가 나를 믿어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를 힘들게 살라고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이젠 퇴회한지도 어느 덧 다시 6년,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그 때를 돌이키면 바로 엊그제 같은 기억이 든다.

 

사람은 최대한 나쁜 경험은 안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참 많이 든다. 그 모든 것들이 투사가 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곤 하니까... 그리고 다시 내게 상처가 되어 돌아오니까 말이다.

 

죽을 만큼 괴롭다면, 괴로운 것을 계속 들여다보지 말고, 하느님께서 만드신 다른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하느님께서 나를 죽이시지 않는다. 새로운 사랑들 안에서 하느님은 또 다른 형태로 살아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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