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그리고 나/나의 독일 일상

[독일 생활] 잘, 그리고 행복하게 살고자 온 곳인데,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Katharina 2024. 11. 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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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성당에 나간지 오래되었지만, 그럼에도 하느님을 믿는 나로서 기도로 시작해본다.

'하느님, 지금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일깨워 주시고, 성모님, 어머니의 손길로 그들을 하느님의 빛으로 인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어제 독일에 사는 유일한 내 한국인 친구의 소식을 그의 언니를 통해 들었다. 지금 위독하다고...
이 친구는 나보다 한 살 적은 동생이라 항상 나는 동생이라 부른다. 아무튼 그 동생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오픈해서 쓸 수는 없지만, 그 동생을 그동안 관심가지지 못하고, 내 사는 것에만 바빠서 수없이 외면한 나를 나는 질타한다.

내가 독일에 온 이유는 무엇이었나 돌이켜보면, 그게 돈은 아니었다. 돈은 한국에서도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돈이 없는 운명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늘 돈을 쫓았던 것 같다. 수녀원에서 조차 내 가족들을 생각하며 돈돈 거렸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독일에 온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진짜 살기 위해서 한 선택이었는데, 독일에 어느 순간 적응하면서부터 다시 돈돈 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독일에 왔을 땐, 확실히 빨리빨리하는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돈을 쫓으며 사는 스트레스 보다는 내가 가지는 여유들과 새로 만나는 사람과의 소통, 새로 배우는 것들, 그리고 사람에게 가지는 연민, 이해, 그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간호사지만 밑바닥에서, 그러니까 요양원에서 조무사로 있으며, 똥 치우고, 닦이고, 청소하는 일이 부끄럽디 않았다. 그래서 초반에는 아무리 내 목표가 있지만, 여유가 있었고, 그 동생에게 내 삶을 보여주고, 열어주고,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독일에 적응하면 적응할 수록 다시 욕심이 생겼고, 한국에서 가지는 스트레스를 그대로 가졌으며, 다시 돈을 쫓고, 더 잘살고 싶어지고, 더 높은 자리에 가고 싶어지고, 그러다보니 삶에 여유가 없어지며, 다시 경쟁 구도를 만들어 나갔다.

도대체 왜, 나는 왜 이러는 것일까

그녀와 함께한 뤼벡

내 삶에 여유가 없어질수록 나는 그녀를 만날 수 없는 이유들이 너무 늘어났다. 그녀의 문자가 때로는 귀찮기도 했다. 전화를 잡으면 2-3시간 이어지니, 때론 그냥 피해버리기도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일이 너무 고되다는 핑계로, 나와는 전혀 다른 환경의 그녀는 나를 이해할 수 없을거라는 편견으로 나는 점점 벽을 쳤던 것 같다.

요즘 연락이 없는 그녀가 걱정이 되면서도 내 일하는 것에 너무 바빠서 문자 몇개 다 보내는게 전부였다. 그리고 내가 아파지면서는 더욱 더 연락이 줄어들었다. 그녀가 얼마나 아프고 외로운지는 모르고...

외로운 갈매기와 외로운 섬 하나

멈춤 ✋️

이제 멈출 때가 왔다.
너무 무언가를 쫓고, 경쟁해서 쟁취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이 생활에 멈춤의 신호가 왔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게 무조건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간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함께하고 싶은 수단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그 수단에 집중하느라 결국 내가 향해야하는 목표를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굳건한 다짐을 한다.

내가 좀 손해보면 어때
내가 좀 더 희생하면 어때
그래 내가 좀 더 피곤하면 어때
그것이 나를 죽게하지 않는 한 그냥 해버리자

오늘 내 친동생들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무엇이 필요한게 없는지, 속상한 일들이 없는지, 물어봐야지...

그리고 내 예쁜 친구, 그 동생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하는 나날들로 내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원치 않으시고, 우리가 살길 바라시니, J에게 항상 생명의 빛을 주시고, 현재 어둠 속에서 헤맬 그녀를 하느님께서 찾아 우리에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녀가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다면, 우리가 다시 사랑하게 해주시고,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랑 안에 현존하시니, 그 사랑 안에서 다시 한번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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