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생활] 독일 대학병원 응급실에 간호사가 아닌 환자로 다녀온 후기
간호사로 살고 있지만, 여태껏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한 번도 환자로서 주사 바늘을 받아 본 적이 없고 수액을 맞아 본 적도 없다.
이런 내가 며칠 전부터 알레르기 반응이 심해 병가를 내고 쉬고 있던 도중, 알레르기가 목과 얼굴 전체에 심하게 퍼지면서, 잘못하면 기도로 알레르기가 와서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요일에 함부르크 대학병원, 그러니까 내가 일하는 곳 응급실에 환자로 들어갔다.
뷔르츠부르크(Würzburg) 응급실에 다녀온 친한 한국인 동생이 꽤 괜찮았다고 하는 것과 달리, 나는 굉장히 이 대학병원에 실망을 했다.
요즘 내가 일하는 곳에 대한 실망감과 독일의 의료 시스템에 대한 안 좋은 점들이 속속들여 보이는데, 후... 이번 응급실 입원 후로 정말 아프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응급실 일기를 시간별, 증상별, 내가 느꼈던 순간별대로 써내려가보겠다.
1. 오전 9시 30분 응급실 수속을 밟았음
그때까지만해도 알레르기가 목과 얼굴에 심하게 올라왔지만, 눈을 못 뜰 정도까지는 아니었음
가장 기본적인 Vital sign 체크도 안함, 그래서 열이 나는데 약 하나 안주고 의사 기다리라고 Wartezimmer로 감
2. 남자친구가 근무에 빠질 수 없어 10시 30분 혼자 남겨짐
혼자 있으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더라
내가 왜 독일에 와서 이렇게 스트레스 받고 사나,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까지 왔나
3. 11시, 얼굴과 목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함, 양쪽 어깨와 팔에 알레르기가 번지기 시작했고, 통증이 목에서부터 시작되어서 얼굴을 당기는 느낌이 남
4. 12시 30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간호사에게 약을 달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밖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 보이지 않았고 나는 다시 입원 수속을 하는 간호사와 이야기하기 위해 다시 줄을 서야했다. 그리고 정말 불친절하게 이름을 묻고는 이부프로펜을 주겠다고 하더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를 까먹고 약을 주지 않았다. 그 때도 열을 체크하지 않음, 무슨 대학병원이 열이 난다는데, 열도 체크 안하는 응급실이 있나?
5. 13시 30분, 결국 울었음
증상이 너무 심해져서 목이 붓고 기도를 누르는 동통감이 올라오는데, Puls Oxymetry로 산소 포화도를 측정하고는 괜찮다고 기다리란다ㅠㅠ 아니 의사가 바빠서 못오면, 간호사가 의사 오더 없이 줄 수 있는 약도 있고, 전화로 물어서 구두처방을 받을 수 있는 건데, 알레르기 반응이 더 심해지면 죽을 수도 있는 건데, 거의 죽기 전까지 기다렸음
그 때까지 아무런 약도 못 받음
6. 14시, 오후 근무 간호사가 옴, 몇가지를 물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음, 그나마 친절해서 다행
7. 15시 30분, 드디어 의사를 만남
그 때 내 알레르기는 눈을 못 뜰 정도로 심해져서 걷기 조차 어려웠음, 내가 15살 때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 적이 있는데, 그 때 한국 시골 응급실에서 주사 한 방을 맞고 몇 초 만에 증상이 다 사라진 경험이 있었기에 여기서도 주사를 맞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지만 주사는 커녕 약조차 없었다. 이것저것 물으며 처방전에 들어갈 약을 오더했지만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약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튼 진료를 받고 나는 다시 처방전과 의사소견서를 기다려야 해서 다시 나가서 40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호흡 곤란이 오면 다시 오란다. 아니 벌써 목이 너무 부어서 숨을 깊게 못 쉬겠는데, 그리고 아니 호흡곤란이 오기 전에 빨리 항히스타민제와 코티졸을 달라고ㅠㅠ 6시간째 응급실이나 그냥 일반 병동에 있을 법한 흔하디 흔한 약 하나를 못 받았다.
8. 일요일이라 약국 문이 닫겼다. 대학병원이라도 얄짤없이 일요일엔 약국 문을 닫는다. 처방전을 들고 구글에 응급약국을 찾기 시작했고, 나를 데리러 온 남자친구 아빠와 차를 타고 지도를 보며 함부르크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드디어 약국을 찾았고 결국 받은 항히스타민제와 코티졸 크림을 17시 40분이 되어서야 투약할 수 있었다.
9. 20시, 그래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더 심해져 남자친구 엄마가 퇴근후 집으로 왔고 코티졸 5mg을 들고왔고, 의사가 처방한 건 아니지만 진짜 죽겠다 싶어 가릴 것 없이 그걸 먹었고, 1시간 후 증상이 눈에 뛰게 호전되었다.
10. 결론은 다시는 적어도 독일 함부르크 대학병원 응급실은 안간다. 사고나서 어쩔 수 없이 가거나, 내가 일하다가 쓰러지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평소에 건강관리 잘하고, 알레르기 테스트를 피부과에서 받아봐야겠다.